내가 읽은 시(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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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북해의 억새 [마종기 ]2020-07-31 13:08:35
작성자 Level 10

정확히는 해안이 아니었어.

북해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능선,

그 언덕에 핀 지천의 은빛 억새꽃이

며칠째 메아리의 날개를 내게 팔았지.

저녁 바람을 만나는 억새의 황홀을 정말 아니?

 

그래도 가을 한 자락이 황혼 쪽에 남았다고

암술과 수술을 구별하기 힘든 억새꽃이

뺨 위의 멍 자국만 남은 내게 다가와

만발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왜 오래 장소에만 집착하며 살아왔는지,

내가 사는 곳에는 사철 열등감만 차 있고

눈이 올 듯 늘 어둡고 흐려야만 안심을 했지.

그래서 순천에서 만난 억새는 놀라움이었어.

북해에 살던 그 풀들도 친척이 된다는 말,

얼마나 내 묵은 심사를 편하게 해주었던지.

 

나는 이제 아무 데나 엎드려 잠잘 수 있다.

하루 종일 자유롭게 길 떠나는 씨를 안은 꽃.

꽃이라 부르기엔 눈치 보이던, 북해의

외딴 억새도 고향의 화사한 피의 형제라니!

저녁이면 음정이 같은 메아리가 된다니!

 

변하지 않는 시야에 서 있는 귀향의 끝,

평범하게 말없이 살자고 약속했던 그대여,

끝없는 추락까지 그리워하며 잠들던 그대여,

나도 안다, 우리는 아직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내가 찾던 평생의 길고 수척한 행복을 우연히

넓게 퍼진 수억의 낙화 속에서 찾았을 뿐이다.

#마종기#북해#억새#억새꽃#저녁바람#황홀#집착#하루종일#메아리#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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